조훈희 변호사의 실무 노동법 강의
안녕하세요. 조훈희 변호사입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 지면을 통하여 노동법을 중심으로 민법, 형법, 소송법 등 기업 인사노무 실무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법리들을 가능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법무법인 랜드마크 대표변호사 조훈희 (semhun@naver.com)
들어가며 — 취업규칙은 왜 절차 요건의 제약을 받는가
그간 수회 본 강좌에서도 다루었듯이, 노동관계에 대하여 노사 양측 의사 합치를 통해 양자 간 공동 명의로 성립되는 단체협약이나 근로계약과 달리, 취업규칙은 사업주 일방이 작성 주체로서 단독 명의로 성립됩니다.
쉽게 말하면 사업주 단독으로 취업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업장 내 수많은 근로자가 존재한다는 노동관계의 특수성이 반영된 제도입니다.
그러나 양자 간 법률관계에 적용될 내용을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만들고 변경하고 한다면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겠지요. 따라서 우리 근로기준법은 작성·변경 시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노동조합으로부터,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과반수 근로자들의 의견을 청취하여야 하고, 특히 불이익 변경 시에는 동의를 얻도록 함으로써 단독 성립에 대하여 절차상 요건으로 그 유효성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불이익 변경 시 동의 방식에 대하여, 과반수 노동조합이 없을 경우 우리 대법원은 자율적·집단적 의사결정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수십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의 집단 동의를 얻음에 있어 일정 부서별로 그 동의를 취합하는 방식으로 시행함이 일반적인 실무례였는데, 최근 이러한 방식에 대하여 그 유효성을 부정한 고등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비록 대법원 계류 중이기는 하나, 동의 방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룬 대상판결을 통해 그간 확립되어 온 ‘자율적인 집단적 의사 결정’의 구체적 양태를 고민해 보기로 합니다.
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22.10.12. 선고 2022나2004418(본소), 2022나2004425(반소) 판결
1. 사건의 개요
피고 회사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상 의무적으로 부여되는 법정 연차유급휴가와 법정 유급휴일 외에 취업규칙에 4일의 유급휴일이 추가로 규정되어 있었는데, 피고는 이 4일의 약정 유급휴일을 폐지하고 법정 연차유급휴가로 대체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을 시행하였습니다.
피고의 인사 담당 부서는 취업규칙 개정 내용을 공고하였고, 4일간 부서별로 부서장이 동의서를 취합하는 방식으로 동의 절차를 시행하였습니다.
피고 사업장 근로자인 원고들은 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무효라며, 기존 취업규칙에 따라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있어서 취업규칙 변경이 불이익 변경에 해당되어 동의 절차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하여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약정 유급휴일의 폐지이므로 불이익 변경 쟁점에 대한 큰 논란은 없었던 사안입니다.
결국 피고가 시행한 동의 방식이 유효한지 여부가 주된 쟁점입니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장 내 과반수 근로자가 가입한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노동조합으로부터 동의를 받으면 되고,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94조(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
①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② 사용자는 제93조에 따라 취업규칙을 신고할 때에는 제1항의 의견을 적은 서면을 첨부하여야 한다.
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음에 있어, 수많은 근로자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의를 득할지에 대하여 방법론적으로 실무상 고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 판례는 일관되게 “자율적인 집단 의사 결정”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동의 대상인 근로자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그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는데, 사업장 규모가 크면 클수록 대규모 근로자 전체가 모이기는 현실상 어려우므로 기구별·부서별 등 일정한 단위의 각 집단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도 무방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본 사안에서 시행한 부서별 동의 취합에 대하여 그 유효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본 사안에서 피고가 시행한 동의 방식의 어떠한 점이 유효성을 부정하게 된 근거로 작용하였는지 살펴봅니다.
2. 관련 법리
사용자가 취업규칙의 변경에 의하여 기존의 근로조건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요하고, 이러한 동의를 얻지 못한 취업규칙의 변경은 효력이 없으며, 그 동의의 방법은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들의 회의방식에 의한 과반수의 동의를 요하고,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라 함은 사업 또는 한 사업장의 기구별 또는 단위 부서별로 사용자측의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근로자 간에 의견을 교환하여 찬반을 집약한 후 이를 전체적으로 취합하는 방식도 허용된다. 여기서 사용자측의 개입이나 간섭이라 함은 사용자측이 근로자들의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할 정도로 명시 또는 묵시적인 방법으로 동의를 강요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사용자측이 단지 변경될 취업규칙의 내용을 근로자들에게 설명하고 홍보하는 데 그친 경우에는 사용자측의 부당한 개입이나 간섭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0.1.28. 선고 2009다32362 판결 참조).
‘정기휴가 4일을 부여하였던 정기휴가 제도를 폐지하면서 이를 규정하였던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으로 변경되는 이 사건 취업규칙에 대하여 근로자들 과반수의 적법한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① 근로자들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하여 주지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방법에 의한 원고의 공고·설명 절차가 있었는지 여부, ② 근로자들이 회의 등 집단적인 논의절차를 거쳐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하여 찬반 의견을 교환하였는지 여부, ③ 근로자들의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한 집단적 의견이 찬성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서울고등법원 2017.1.13. 선고 2015나2049413 판결(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제1항에 따라 2017.5.31. 대법원 2017다209129 판결로 상고 기각) 참조]
정리하면, 부서별 취합 방식 자체는 법리상 허용되며, 그 유효성은 다음 세 가지 요건의 충족 여부로 심사됩니다.
| 구분 | 심사 요건 | 확인 대상 |
|---|---|---|
| ① | 적절한 방법에 의한 공고·설명 | 근로자들이 변경 내용(정기휴가 제도 폐지)을 주지할 수 있었는지 |
| ② | 회의 등 집단적 논의절차 | 근로자들이 찬반 의견을 교환하였는지 |
| ③ | 진정한 찬성의 집단적 의견 | 집단적 의견이 찬성이라고 볼 수 있는지 |
3. 대상판결의 판단
1) 원고가 ‘정기휴가 제도 폐지’를 적절한 방법으로 공고·설명함으로써 근로자들에게 이를 주지시켰는지 여부
원고는 근로자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한 공지와 설명을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는 2015.12.8. 사내게시판에 이 사건 공고(갑 제3호증)를 전산으로 게시하였으나, 위 공고에서 기재한 취업규칙 개정의 ‘주요내용’에는 “정년연장 및 임금피크제 내용 반영”, “연봉제 퇴직자 급여 지급방법 변경”, “취업규칙 내 미반영된 인사제도 변경사항 반영”, “징계관련 규정 변경”, “법률 개정사항 반영”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었을 뿐, 근로자들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한 내용이 취업규칙 개정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바로 알 수 있거나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문구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이 사건 공고에 첨부된 파일(갑 제6호증)에는 ‘정기휴가 제도 폐지’가 “취업규칙 내 미반영된 인사제도 변경사항 반영”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처럼 되어 있으나(제32조, 제72조의 ‘비고’란에 ‘현황반영’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위와 같은 기재만으로는 근로자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어려워 보이고, … 따라서 위 공고를 열람한 근로자들로서는 취업규칙 변경 대상에 ‘정기휴가 제도 폐지’가 포함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는 2015.12.8.부터 2015.12.11.까지 4일 동안 수차 회의를 통해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였다고 주장하나, … 근로자들에게 ‘정기휴가 제도 폐지’를 포함한 취업규칙의 개정 필요성 및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이의 실시로 인한 근로자들에 대한 불이익 등을 직접 설명하였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2) 근로자들이 회의를 개최하여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하여 찬반 의견을 교환하였는지 여부
원고로서는 사내인트라넷에 ‘토론방’이나 ‘찬반의견란’ 등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하여 근로자들이 의견을 게시하고 교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거나, 공고 후 상당한 기간을 두어 팀별 단위로 분리되어 있거나 팀 내에서 같은 직급이 소수인 근로자들이 다른 근로자들 또는 같은 직급의 근로자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집단 의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한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할 것임에도, 원고가 이런 조치를 취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 즉, 취업규칙 변경의 동의대상 근로자들 전원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한 회의 개최 등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을 통해 찬반 의견을 교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3) 근로자들의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한 집단적 의견이 찬성이었는지 여부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의 동의대상 근로자들 449명 중 약 397명(약 88.4%)이 ‘찬성’란에 서명을 한 사실이 인정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가 위 동의대상 근로자들 전원에게 ‘정기휴가 제도 폐지’가 취업규칙 변경에 포함되어 있고 그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주지할 수 있도록 적당한 방법으로 이를 공고·설명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위 동의대상 근로자들 전원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하여 회의를 통하여 찬반 의견을 교환한 후 동의서에 그에 대한 찬반 서명을 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에 비추어, 위 동의 숫자만으로는 근로자들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하여 과반수 동의를 함으로써 그에 대하여 진정한 찬성의 집단적 의견을 표시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4. 정리하며
본 대상판결은 상고심 확정 판결은 아니지만, 부서별 집단의사결정에 따른 동의 취합 방식의 유효성에 대하여 적절한 공고에 따른 주지, 적절한 의견 교환 기회 부여, 진정한 찬성 의견 도출이라는 요건에 따라 구체적 사실관계의 심리를 통해 그 유효성 여부를 평가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대규모 사업장에서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근로자 집단의 동의를 득할 시, 실무적 방법의 구체적 구현에 있어서 유의미한 또 하나의 기준이 되는 선례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