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훈희 변호사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노동법을 중심으로 민법, 형법, 소송법 등 기업 인사노무 실무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법리들을 가능한 쉽게 풀어드리는 공간으로 꾸미겠습니다. — 법무법인 랜드마크 대표변호사 조훈희 (semhun@naver.com)
연차유급휴가에 대한 사용자 시기변경권의 법리
그간 본 강의에서 다루었듯이, 개근이라고 하는 요건을 갖추면 근무 첫 해는 월 1회, 둘째 해부터는 년 15일에서 25일의 연차유급휴가가 부여됩니다. 휴가는 휴일과 달리 날짜가 특정되어 있지 않지요. 그저 며칠이라고 하는 개수만 주어집니다.
부여된 개수 안에서 언제 사용할지는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자유이자 재량입니다. 이 재량권을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이라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사업주는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한 날에 휴가를 부여하여야 하고, 다만 업무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경우 근로자가 지정한 날 대신 다른 날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이를 시기변경권이라고 합니다.
대상판결은 근로자가 행사한 시기지정권에 대하여 사업주가 시기변경권을 행사하였는데, 그 시기변경권이 요건을 갖추었는지 그래서 적법한지에 대하여 다루어진 사례입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노동법은 임금 지급 의무,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 연차유급휴가 부여 의무 등 사업주의 의무 미이행에 대하여 단순히 민사적 책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미이행 자체를 형사상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였지요.
그렇기에 본 사안에서 시기변경권의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는 연차유급휴가 부여 미이행과 그 궤를 같이 하기에 범죄 성립 여부의 형사 재판이 진행된 것입니다. 대상판결의 사례를 통해 연차유급휴가에 대한 시기변경권의 법리를 살펴봅니다.
대상판결: 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1도11886 판결 [근로기준법위반]
1. 사건의 개요
피고 회사는 시내버스 운수업을 운영하는 사업장입니다. 이 회사의 단체협약에는 '근로자는 휴가 신청을 3일 전에 서면으로 제출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소속 버스 운전기사인 공소외 1이 휴가 예정일로부터 불과 사흘 전(영업일 기준으로는 더 짧은 기간)에 전화로 "다음 주 월요일 오후에 휴가를 사용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회사는 단체협약상 기한 미준수와 대체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이를 승인하지 않았으나, 근로자는 휴가를 강행하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휴가를 부여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며 기소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3일 전 신청' 규정을 어긴 휴가 청구에 대해 사용자가 시기변경권을 행사한 것이 적법한지 여부였습니다.
2. 일반 법리
1) 시기지정권과 시기변경권
우리 근로기준법에 휴가와 휴일이 있지요. 쉰다고 하는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둘의 차이는 날짜가 특정되어 있는지 여부입니다.
근로자의 날이 유급휴일이지요. 근로자의 날은 5월 1일로 날짜가 특정되어 고정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휴일이지요.
반면 휴가는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근로자가 쉬는 날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차유급휴가에는 1년에 15일과 같이 개수만 정해져 있을 뿐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휴가에는 근로자가 날짜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고, 이를 시기지정권이라고 부릅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연차 유급휴가) ⑤ 사용자는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하고, 그 기간에 대하여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통상임금 또는 평균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그런데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고자 하는 날 하필 회사에는 매우 중요한 미팅이나 행사가 있을 수 있고, 그 근로자가 그 미팅이나 행사의 결정적인 담당자라고 하면 어떨까요. 상식적으로 봐도 회사 업무에 큰 지장이 있다면 이날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해서 출근하지 않는 것은 매우 불합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에 대해서 사업주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는 시기변경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기변경권의 요건을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2) 사업운영 막대한 지장을 다룬 판례
서울고등법원 2013. 5. 31. 선고 2012누28522 판결
근로자 A는 석가탄신일, 어린이날과 주말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 사이에 끼어 있는 평일 이틀에 대하여 연차휴가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으나, 사업주 회사 B가 연휴 기간 업무량이 폭증하는 업무 특성을 이유로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했습니다. 휴가 신청이 반려되었음에도 A는 신청한 이틀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B는 휴일과 신청했던 휴가 이틀을 모두 쉬고 5월 8일 비로소 출근을 한 A에게 24일의 정직 징계처분을 내렸습니다.
A는 징계처분이 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고, 구제 절차에 이어 행정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1심은 "회사의 취업규칙은 휴가가 업무에 지장이 있거나 집단으로 실시해 업무방해가 예상될 때에는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회사는 징검다리 연휴에 가전제품 수리요청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해 연차휴가 실시를 일정 부분 제한하기로 한 것임에도, 근로자가 연차휴가 신청의 반려조치에도 불구하고 무단으로 결근하였고 해당 기간 회사 측의 연락도 일절 받지 않았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사업주 B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근로자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습니다.
2심은 "근로기준법과 회사의 취업규칙은 근로자에게 연차휴가를 신청하면서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취업규칙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야만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석되지 않는다"고 하며 '휴가 사용의 사유'는 시기변경권 행사의 정당성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이어 "근로기준법상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은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해 행사할 수 있으며, 이는 사업장의 업무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되는 경우를 말하고, 인력이 부족해 단순히 남아 있는 근로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가능성만으로는 시기변경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며 회사의 시기변경권 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근로자는 적법하게 휴가를 사용한 것이므로 무단결근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징계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3) 연차휴가의 사용 목적과 시기변경권
실무에서 근로자가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목적이나 동기를 이유로 사업주가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시기변경권의 요건에 있어 근로자의 휴가 사용 목적이 고려될 수 있는가 하는 쟁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올시다'입니다. 근로자는 기본적으로 휴가 사용 날짜에 대한 선택권이 있고, 다만 사업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시기변경권이 가능하지요. 근로자의 휴가 사용 목적은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근로자가 애초 연차유급휴가를 신청했던 이유(이사 준비)와 다르게 집회에 참석하자 사용자가 해당 연차유급휴가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한 사안에서, 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가 신청한 일시에 별다른 이의나 유보 없이 연차휴가를 승인했다가 원고가 신청 사유와 달리 위 연차휴가 중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단결근 처리를 한 것은 법에서 정한 연차휴가의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고, 그와 같이 정당한 시기변경권에 근거하지 않은 무단결근 처리는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가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1999. 7. 16. 선고 99구2832 판결
같은 취지로, 회사 업무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고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집단적으로 일제히 같은 시기를 지정해 연차휴가를 신청하는 경우와 같이 연차휴가의 신청 자체가 부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휴가의 목적과 동기는 근로자의 자유에 맡겨져 있으므로 근로자들이 연차휴가의 시기를 지정해 휴가를 신청한 후 그 휴가 중에 쟁의행위에 참가하고자 한다는 사정만으로 연차휴가의 신청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서울행정법원 2012. 8. 23. 선고 2012구합2634 판결
3. 대상판결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법하게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내용과 성격, 근로자가 지정한 휴가 시기의 예상 근무인원과 업무량, 근로자의 휴가 청구 시점, 대체근로자 확보의 필요성 및 그 확보에 필요한 시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특히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과 같이 운영의 정시성이 중요한 사업에 있어서는 대체근로자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단체협약상 신청 기한의 효력 존중
노사가 합의한 '휴가 3일 전 신청' 규정은 대체근로자 확보 등에 소요되는 합리적인 기간을 고려한 결과물입니다. 근로자가 불가피한 사유 없이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것은 객관적으로 사용자에게 대체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발생시켜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휴가 청구에 관한 기한을 정하고 있는데도 근로자가 불가피한 사유 없이 그 기한을 준수하지 않고 휴가를 청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용자가 지정된 휴가 시기까지 대체근로자를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발생시켜 그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합니다.
사업의 특성과 대체 인력 확보의 곤란성
시내버스는 공익성이 강해 정해진 배차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당 근로자가 휴가를 신청한 날은 수요가 많은 월요일이었고, 이미 다른 운휴 차량이 존재하여 추가 결원이 발생할 경우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근로시간 단축(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인해 연장근로를 통한 대체 인력 확보도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대법원은 '3일 전 신청'이라는 조건이 근로자의 휴가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만큼 긴 기간이 아니며, 사용자가 시기변경권을 적절히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합리적인 기간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과 같이 운영의 정시성이 중요한 사업과 관련하여 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휴가 청구에 관한 기한을 정하고 있는데도 근로자가 불가피한 사유 없이 그 기한을 준수하지 않고 휴가를 청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용자가 지정된 휴가 시기까지 대체근로자를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발생시켜 그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 해당한다. — 대상판결(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1도11886 판결)
4. 정리하며
본 대상판결은 특히 노사 합의로 정한 휴가 신청 절차의 규범적 효력을 명확히 인정했다는 점에서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대규모 사업장이나 공공 서비스 성격이 강한 사업장에서 근로자의 휴가권 보장과 사용자의 운영권(시기변경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