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희 변호사의 실무 노동법 강의
안녕하세요. 조훈희 변호사입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 지면을 통하여 노동법을 중심으로 민법, 형법, 소송법 등 기업 인사노무 실무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법리들을 가능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법무법인 랜드마크 대표 변호사 조훈희 (semhun@naver.com)
취업규칙, 근로관계에만 존재하는 특유한 법원(法源)
취업규칙은 수많은 계약 관계 중 근로관계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특유한 법원(法源)입니다. 본 강사도 법대생 시절 민법만 접하다가 노동법 시간에 취업규칙을 처음 듣고는 좀 낯설고 의아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양자 간의 권리 의무관계를 규정하는 내용을 당사자 일방이 만든다는 것은 사실 의사의 합치를 기본으로 하는 계약 관계에 있어서 매우 이질적인 형태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근로관계가 하나의 사업주에 다수의 근로자를 상정하는 사업장이라고 하는 집단과 조직의 모습을 고려한다면, 집단과 조직 내에서 일정하고도 통일적인 내부적 규범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반적 법리적 원칙과 사실적 모습 속에서 그 균형을 취하는 장치가, 불이익하게 변경 시에는 집단적 동의 내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효력이 있다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입니다. 그 문서의 성립 자체는 일방이 하되 불이익한 변경에 있어서 동의 절차를 둠으로써 사실상 의사의 합치와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과반수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 다수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바, 이른바 집단적 동의 방식의 정당성과 유효성에 대해서 법리적 고민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대상 판결을 통해 그 법리적 고민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상판결 : 대법원 2026. 6. 25. 선고 2025다215010 판결
4. 대상 판결의 판단
이 사건은 원심에서 적법한 집단적 동의로 판단하였는데, 상고심 대상판결은 원심과 다른 판단을 하였습니다. 같은 사실관계의 요소들을 놓고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교환할 수 있는 집단적 회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그 판단이 엇갈렸습니다. 각 사실의 요소 별로 판단을 봅니다.
(1) 회합과 의견 교환 절차의 부재
원고들을 포함한 피고 근로자들이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동의 여부를 밝히기에 앞서 사업장 전체 단위로 또는 기구별, 부서별 단위로 회합하여 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찬반의 의사를 모으는 등의 절차를 진행하였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발견하기 어렵다. 피고가 이 사건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 종료 후인 2014. 6.경 각 지점의 지원팀장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명회는 위 단체교섭 과정에서 피고 측 협상위원으로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일부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이를 동의의 주체인 전체 근로자의 회합으로 볼 수는 없다. 나아가 피고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피고가 위 설명회 이후 각 지점별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추가로 개최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설령 추가 설명회가 개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설명회가 근로자들이 의견을 교환하여 찬반의 의사를 모으는 회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각 지점들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전체 지원팀장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전체 근로자가 아니므로 그 대상에 하자가 있으며, 이후 지점 별로 각 근로자들의 동의를 징구하였으나 각 지점별 징구 방법에 있어 의견 교환과 수렴에 대한 회의 방식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2) 구체적 설명과 동의권 고지의 결여
피고가 사내 전산망에 게시한 공지사항에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동의서에도 단지 개정 전후의 취업규칙 내용을 병렬적으로 기재한 표가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위 공지사항과 동의서에는 동의 절차의 성격이 '단체협약 체결 및 근로기준법 변경에 따른 개정 사항을 취업규칙에 반영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어, 근로자로서는 자신의 의사표시가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에 대해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에 따른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임을 충분히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위 공지사항과 동의서만으로는 피고가 근로자들에게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대한 동의 절차에 앞서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내용 및 근로자들이 입게 될 불이익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임금피크제 변경에 관한 취업규칙 내용이 사내 전산망에 게재되기는 하였지만, 개정 전후의 내용에 대한 표만 있을 뿐 구체적인 설명이나 동의에 대한 안내가 없어 동의권을 판단하기 위한 충분한 설명이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3) 집단적 의사 형성 기회의 실질적 보장 여부
피고는 근로자들에게 위 공지사항 및 동의서를 게시한 때로부터 7일의 동의 기간을 부여하였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피고가 위 기간의 시작 전후에 위 공지사항과 동의서 등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내용 및 동의 절차의 취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고 근로자들은 본사를 비롯하여 전국의 여러 지점에 산재하여 근무하고 있어 단기간 내에 전체 또는 단위별로 회합하거나 의견을 교환하여 찬반의 의사를 모으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달리 피고가 집단적인 방식으로 근로자들 상호 간 의견을 교환하고 찬반 의견을 집약한 후 이를 취합하도록 독려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피고가 부여한 동의 기간과 동의 절차만으로는 근로자들이 이 사건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집단적 의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절차들만으로는 근로자들 간 의사를 수렴하고 교환할 충분한 집단적 동의 절차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4) 과반수 노동조합이 아닌 노동조합의 동의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적법한 동의 주체인 노동조합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피고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아닌 이 사건 노동조합과의 합의에 따라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였다고 하여 적법한 주체에 의한 동의가 있었다고 할 수 없고, 이 사건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이나 협의가 근로자 과반수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동의 과정에서 회사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기도 하였지만 이 노동조합은 대상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아닌바, 과반수 노동조합이 아닌 동의 역시 부적법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5) 개별 동의서 방식의 한계
근로자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동의서를 받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의견 형성 과정에 근로자들 상호 간 의견을 교환하고 찬반 의견을 집약하는 회의 방식 등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실질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임금피크제에 대해 개별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시한 피고 근로자의 수가 형식적으로 과반수를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 취합 결과가 근로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상판결)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동의를 위한 여러 절차들은 존재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원심은 비록 각 절차들의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으로 연결하여 그 적법성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대상판결은 근로자 보호라는 대원칙의 취지에 비추어 각 절차들의 흠결을 가벼이 보지 않고, 실질적인 의견 교환과 수렴이 바탕이 되는 집단 근로자 간의 회의 방식을 요구한 것입니다.
대상 판결의 핵심 사실과 쟁점 정리
| 쟁점 | 핵심 사실과 판단 |
|---|---|
| 회합·의견 교환 방식 결여 | 지점의 팀장들만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와 지점별 실질적 회의가 없이 동의서 징구 |
|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설명 부재 및 동의의 성격 고지 결여 | 사내 전산망에 게시된 공지사항에는 임금피크제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동의서에도 개정 전후 규정을 병렬적으로 기재한 표만 제시됨 |
| 집단적 의사 형성 기회 보장 결여 | 동의 기간이 7일이었으나 의견 교환이라기보다 징구 기간에 불과하여, 집단적 의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고 하기 어려움 |
| 과반수가 아닌 노동조합의 동의 | 적법한 동의 대상의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이나 협의가 근로자 과반수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을 대체할 수도 없음 |
| 개별 동의서 방식의 한계 |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동의서를 받는 방식을 사용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견 형성 과정에 근로자들 상호 간 의견을 교환하고 찬반 의견을 집약하는 회의 방식 등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이 수반되어야 하나 결여됨 |
5. 결어
대상판결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시 요구되는 집단적 동의의 적법한 방법이 사내 전산망을 통한 개별 동의 방식에서 어떻게 충족되어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 판결입니다.
전자 동의서 징구 방식 자체는 허용된다고 보면서도, 다음 세 가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 의견 교환·찬반 집약이라는 회의 방식의 실질
- 변경 내용과 불이익에 대한 충분한 사전 설명
- 당해 절차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한 동의권 행사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고지
법원 판결에서 종합적으로 보고 실질적으로 본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어느 하나의 단편적인 요소나 사실들만으로 결론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집단적 동의 방식이 적법하였는가 하는 쟁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대상 판결을 통해서, 그간 산업에서 실무적으로 해 왔던 취업규칙 동의 방법이 대상판결의 눈높이에 맞는지 다시금 살펴보고 검증할 필요가 있게 되었습니다. 다소 복잡하고 다소 느릴 수 있지만, 법의 정신을 충실히 구현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판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