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희 변호사의 실무 노동법 강의
안녕하세요. 조훈희 변호사입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 지면을 통하여 노동법을 중심으로 민법, 형법, 소송법 등 기업 인사노무 실무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법리들을 가능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법무법인 랜드마크 대표 변호사 조훈희 (semhun@naver.com)
채용 내정의 법적 의미와 내용
회사가 채용 공고를 하고 근로자가 채용 절차에 지원하여 면접이나 시험과 같은 소정의 절차를 거쳐 합격 통지를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채용 절차입니다. 이때 채용 합격 통지 단계에서 바로 혹은 근접한 시기에 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수개월 후 혹은 일이 년 후와 같이 상당 시간이 지난 뒤를 입사 시기로 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합격 통지 후 실제 입사 시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있는 경우를 채용 내정이라고 합니다. 채용내정은 합격 통지와 입사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간이 있으므로 그사이 이런저런 변수가 발생할 여지가 있고, 바로 이 시간 사이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합격을 취소할 수 있는지가 법률상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사업주는 근로계약 기간 도중 정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해지할 수 없습니다. 근로관계 도중 사업주의 일방적 해지를 노동법에서는 특별히 해고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채용내정의 취소도 해고와 동일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이 경우에도 역시 해고제한의 법리가 적용될지 의문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채용내정의 법적 의미와, 취소의 경우 해고처럼 제한이 있는지 그 법리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1. 개요
채용내정이란 본 채용, 즉 실제 입사의 상당 기간 전에 채용할 자를 미리 결정하여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채용 절차를 거쳐 합격 통지 시 바로 혹은 근접한 시기에 실제 입사하여 근로가 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합격 통지 혹은 입사 합의와 실제 입사, 즉 근로 개시 사이에 수개월 내지 일이 년의 상당한 기간의 간극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간혹 대기업에서 졸업예정자나 이미 졸업한 자를 채용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합격 시 1년 후 졸업 시점에 입사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가 채용내정의 전형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채용내정 상태에서 회사에 어떤 내부적 사정이 있어 합격자에게 "미안하지만 합격을 취소하겠다"라고 일방적으로 채용내정을 취소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너무나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근로관계 도중에는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 해고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요소도 필요하고, 근로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근로자의 귀책사유 등 정당한 이유라는 실체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채용내정은 어떠할까요? 어찌 보면 해고와 동일하게 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 근로가 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르게 볼 여지도 있습니다.
결국 채용내정 상태를 근로관계 성립과 관련하여 그 법적 성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2. 채용내정의 법적 성격
채용내정은 채용에는 합격하였으나 아직 실제 근로관계가 개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근로계약 불성립설: 계약 체결 과정의 일부로, 아직 확정적으로 근로계약이 성립된 상태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
- 근로계약 성립설: 채용 절차에 대한 근로자의 지원을 근로계약의 청약으로, 회사의 합격 통지를 그 청약에 대한 승낙으로 보아 합격 통지 시 근로계약의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안을 다룬 바 있습니다.
피고 회사가 1997. 8월경 원고들을 포함한 대학 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들로부터 채용신청 서류를 제출받은 뒤 1997. 9. 29경 서류전형 합격 통보를, 1997. 10. 24경 면접 합격 통보를, 1997. 11월경 최종 합격 통보를 각 한 사실, 1997. 11. 30 열린 입사 예정자 소집 간담회에서 신입사원 입사교육계획 일정과 늦어도 1998. 4. 6까지는 모두 입사일이 지정되어 근무가 시작될 것임이 고지된 사실, 그 후 1997. 11월경부터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는 경제 위기가 도래하자 피고는 1997. 12월경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입사교육을 연기하고 1998. 2월경 당초의 입사 일정이 추후 별도로 결정될 것임을 알리는 안내문을 송부하였고, 1998. 6. 11과 12일 개최된 신입사원 간담회에서 마침내 신규채용의 취소를 통보한 사실 등을 인정한 후, 피고가 1997. 11월경 원고들에게 최종 합격 통보를 해 줌으로써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유효하게 성립되어 늦어도 1998. 4. 6 이후에는 원고들이 피고 회사의 근로자가 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그 후 피고가 원고들에게 한 신규채용의 취소 통보는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한다고…
— 대법원 2000. 11. 28. 선고 2000다51476 [종업원지위확인등] 판결
이에 대해 대법원은 채용 내정된 때에 근로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계약의 성립 시점과 이행기가 다른 것이지, 계약 성립 자체는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우리가 계약을 했다고 해서 늘 바로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 성립 시에 바로 이행해야 할 수도 있지만, 다음 달 말일과 같이 이행기는 성립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시점일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은 4월 1일에 하였지만 목적물의 이행과 매매 대금 지급은 5월 1일에 하기로 할 수 있습니다. 이행기는 5월 1일이지만 계약은 4월 1일에 성립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립 시점과 이행기를 구별한다면 판례의 견해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3. 채용내정의 취소
그러면 사업주가 채용내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어느 정도 답이 나왔습니다.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 등의 제한) ①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이하 "부당 해고 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①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채용내정 또한 근로계약관계가 이미 성립한 것이므로 역시 해고 제한의 법리가 적용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 정당한 이유라는 실체적 사유가 요구됩니다.
만약 통상해고나 징계해고가 아니라 경영상 해고(정리해고라고도 부릅니다)를 하고자 한다면 역시 근로기준법 제24조가 적용됩니다.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다음 네 가지 기준으로 판단하였습니다.
-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하여
- 해고 회피를 위한 사용자의 노력이 병행되면서
- 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하여 해고대상자를 선정하여
- 근로자 측과의 성실한 협의를 거쳐서 행하여진 것
한편 피고회사의 취업규칙에 비추어 신규채용된 자들의 채용내정 시부터 정식발령일까지 사이에는 사용자에게 근로계약의 해약권이 유보되어 있다고 할 것이어서, 원고들에 대하여는 근로기준법 제31조 제3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여, 결국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위 판단은 모두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고, 거기에 채증법칙과 경험칙에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정리해고의 유효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상고이유의 주장은 이유 없다.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신규채용 취소통보가 정리해고에 해당하여 정당한 이상, 피고가 근로계약상의 채무를 불이행하거나 위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원심이 원고들의 예비적 청구인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한 것은 결국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심리미진 또는 판단유탈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상고이유 또한 이유 없다.
— 대법원 2000. 11. 28. 선고 2000다51476 [종업원지위확인등] 판결
다만,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함에 있어 정당한 이유가 무엇이고 구체적 사안에서 그 정당한 이유가 충족되었다고 볼 것인지는 또 다른 평가의 문제입니다. 채용내정은 아직 근로가 구체적으로 개시되지 않은 상태라고 보아, 근로가 개시된 일반적인 근로관계에 비해서 정당한 이유를 비교적 넓게 인정하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채용내정 또한 근로 제공이라는 이행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 근로계약은 성립된 것이므로 채용내정의 취소는 해고에 해당하고,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 정당한 이유라는 실체적 사유가 요구됩니다. 다만 근로가 구체적으로 개시되지 않았다는 사정을 고려하여, 일반 근로계약 관계의 경우보다 정당한 이유의 충족 여부를 평가함에 있어 조금 더 완화하여 평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정리하며
노동법적으로 채용내정의 의미와 법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채용내정 본래의 내용도 의미가 있지만, 계약은 합의가 이루어진 성립 시점과 실제 이행하기로 한 이행기가 개념상 다르다는 계약법의 기본적인 법리를 확인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