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미륵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표고 430m의 미륵산 아래 넓은 평지에 펼쳐져 있어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역을 자랑한다. 백제 사찰로는 이례적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미륵사 창건 설화가 전한다.
연못을 메우고 세운 국가적 가람
무왕 부부가 사자사(師子寺)에 가던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나타났는데, 왕비의 부탁에 따라 이 연못을 메우고 세 곳에 탑과 금당, 회랑을 세웠다고 한다.
이 설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우선 미륵사가 백제의 국력을 모은 국가적 가람이었고, 습지를 매립하여 평지를 조성하였으며,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 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제한다는 불교 경전의 내용에 따라 가람배치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이들 사항은 1974년부터 이어진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사찰의 창건 연대는 무왕 재위기인 7세기 초이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전후하여 폐사(廢寺)된 것으로 밝혀졌다.
백제식 1탑-1금당이 빚어낸 3탑-3금당
미륵사는 중문-탑-금당이 일직선상에 배열된, 이른바 백제식 <1탑-1금당> 형식의 가람 세 동을 나란히 병렬시켜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백제는 1탑 1금당의 사찰 구조를 바탕으로 불교의 미륵신앙을 구현하기 위해 <3탑-3금당>이라는 독특한 사찰 구조로 미륵사를 만들었다. 백제인들은 이 미륵사를 통하여 누구나 평등한 삶을 염원했던 미륵하생의 꿈을 이룩하려 하였고, 이로써 모든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려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고대 백제인들의 신념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미륵사에는 3기의 탑이 있었다. 중원(中院)에는 목탑이, 동원(東院)과 서원(西院)에는 각각 석탑이 있었다. 중원의 목탑이 언제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동·서원의 석탑 중 동원의 석탑은 이미 무너져 있었고, 서원의 석탑은 많은 부분이 훼손된 채 동북 측면으로만 6층까지 남아 있었다.
20년에 걸친 서탑 보수정비
서원의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안정성이 우려되어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학술조사연구와 구조보강, 보존처리 등을 시행하여 2017년 말 6층까지 석탑의 조립을 완료하였다. 이후 미륵사지 석탑 가설덧집 철거 및 주변 정비를 진행하여 2019년 4월, 문화재청장, 도지사, 국회의원, 학계, 종교계,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졌다.
사리장엄이 밝혀낸 창건의 진실
한편 2009년 서원의 석탑에 대한 1층 해체조사를 진행하던 중 심주석 상면 중앙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고, 사리장엄은 사리공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은제관식, 청동합 등 다양한 공양품이 일괄로 출토되었다.
사리봉영기의 판독 결과 석탑은 639년 사리를 안치하면서 건립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미륵사가 백제 무왕시기에 창건되었다는 역사 기록이 정확함을 입증해 준 보기 드문 사례이다.
출처 / (재)백제세계유산센터,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